영화 보기전에 영화 관련 이야기를 미리 보고 가는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 영화에 대해서는 가는데마다 이야기가 넘쳐서 안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부분은 영화 자체 보다는 영화 외적인 이야기가 많았습니다만, 영화를 보기 전에 뭐라고 판단을 내리기는 좀 그렇고 해서 일단 보고 난 감상은. 제발!! 이 영화 안 망했으면 좋겠긴 한데 본전 회수 할 수 있을까가 조금 걱정스러워! 제발 망하지 말아줘!!! 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평소 애국심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만, 국적을 파서 옮기는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파서 옮겨봐야 나고 자란 곳이 이 동네다보니 그래도 나라 이름 걸고 뭔가 하면 한번 더 눈이 가는게 자연스럽달까.. 그런 것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자신이 자의로 고른 곳은 아니지만 일단 속해있으니 안 좋은 곳 보다는 좋은 곳이면 좋겠고, 실제로 좋으면 살짝 기분좋고 그런 느낌. 나라 이름 걸린데 눈이 가는 김에 우리나라 선수들 나간 경기 지는것 보다는 이겼다는게 (쪼금이라도) 좋고, 우리나라 기업 해외 진출했다가 망했다는 소식보다는 나름 잘 나간다는 소식이 좋고(내 수입이랑 많이 관계없으니까 아주 조금이지만.;) 뭐 그런 것들이겠죠.
같은 맥락으로, 저는 애니메이션- 98%쯤 일본 애니지만 - 을 좋아하는 편인데 가끔 보다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얘네는 참 많이도 만들고 재미있는 것도 많고 정말 끈질기게 사무라이랑 기모노 내다파는구나. (우이, 쪼끔 부럽다. ㄱ-)'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도 좋아하는데 보다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납니다. '참 징하게 미국만세네. 얼굴 참 두꺼워. (그치만 그래도 쪼금 부럽기도 하다. ㄱ-)' 또는 '요새는 보는 영화마다 스시바에 기모노풍에.. 돈 많은데다 끈질겨..(...우띠 너무 억지로 밀어넣어서 눈에 거슬려 & 우리나라꺼는 좀 안 나오나.. ㄱ-) 등등.
스포츠는 그리 안 좋아하니 국제대회에서 이기면 좋고 져도 할 수 없고 별 관심없이 지나가지만, 나름 좋아하고 자주 보는 매체들 - 만화, 애니, 영화 - 는 그러니까 눈이 계속 가는겁니다. 한복 나오고 우리나라 옛날 이야기 하는 재밌는 애니 나오면 좋겠다. 좋아하는 한국 만화 원작의 잘 만든 애니가 나오면 좋겠다. 우리나라 배경의 멋진 환타지 영화가 나오면 좋겠다. 그런 바람이 생긴것도 꽤 오래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것이 다 그렇듯이 재밌고 멋지고 괜찮은 수준의 물건/작품은 하늘에서 뚝 안 떨어지는 법입니다.
그래도 국산 애니를 보고 싶었으니까, 저는 블루시ㅂ(..)도 극장에서 봤고, 너무 맘에 안 들어서 제목도 머리속에서 삭제했지만 핑클이 더빙했다는 애니도 전문 성우 안쓰면 망가질게 뻔하지만 팔려면 어쩔수 없었겠구나 하면서 봤고, 붉은매라거나 헝그리 베스트라거나도 극장에서 보면서 나름 괜찮다고 좋아했고 마리 이야기나 원더풀 데이즈를 보고 나서도 앞으로 한 5년만 기다리면 되겠구나. 라고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내내 돈이 안된 결과, 조금씩이지만 수준은 조금씩 나아졌음에도, 그 뒤로 괜찮은 애니 제작프로젝트에 대해서 정보 수집에 게으른 제 귀까지 들어오는건 거의 없는것 같습니다.
환타지 또는 SF에 대해서는 국산영화는 기대도 안했었습니다만, 개봉할 때 다 되서야 디 워 소식을 들었습니다. 포스터를 보고 났더니, 감독이 누구던지간에 보러가야겠다고 맘먹었다죠. 그러고 있는데, 개봉일도 되기전에 온 사방에서 참 온갖 말들이 다 나오는걸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 강요당했던 공산품 등에 관한 국산품 애용등에 관해서는 학교에서 필통검사까지 하며 구박했었음에도 나 쓰고 싶은거 쓸테야. 하고 버텼다던가..등등. 그다지 국산을 우대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만, 굳이 문화 컨텐츠와 구분을 해 보자면 이런 측면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공산품 관련은 품질과 가격이 대체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품질이 좋건 나쁘건 아예 없으면 조금 곤란하지요. 국산 제품의 질이 일방적으로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런경우 대부분 질이 좋은 외제 보다는 가격이 쌉니다. 따라서 꼭 좋은 품질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나 필요한데 예산이 없는 경우에는 적당한 가격의 물건을 쓰면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비슷한 품질의 제품은 물건너 오면 운송비 덕분에 국산보다 비싸지므로 국내산이 선택되게 되고, 그러니까 기업은 그 범위에서 장사해서 돈을 벌어서 연구개발해서 품질을 올려볼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기업들은 그렇게 커왔고, 이제는 일정 분야에서 일정 수준에 도달해 있고 우리나라를 먹여살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문화관련 상품들은, 대부분 품질이 좋건 나쁘건 가격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영화값은 전국이 다 똑같이 고정되어 있고(비 개봉관은 제외합니다.;) 만화책값도 판형과 페이지에 따라 똑같으며, DVD도 안팔려서 나중에 하는 떨이 빼고 출시가는 대체로 비슷비슷 합니다. 나라마다 조금씩 상황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비슷합니다. 재미있는 영화라고 영화값을 두배 받는 곳이 있을까요(...?;). 거기에다 문화 컨텐츠들은 그 것이 없다고 해서 사는데 전혀 곤란하지 않습니다. 재미없으면, 보고싶지 않으면, 소비하지 않으면 그뿐입니다. 물건너 왔어도 전혀 비싸지지 않는 동일한 가격의 대체재도 널렸습니다.
품질이 떨어진다고 선택되지 않는 국내 컨텐츠들은 품질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아예 얻을 수 없게 됩니다. 품질을 올리기는 커녕, 돈이 없어서 같은 퀄리티조차 못 내는 일을 반복하다가 점차 사라지게 되겠지요.
이번에 디 워를 보고 아쉬운 점이 철철 넘치긴 하지만 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는 것은 거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야 다음 작품이 나올거고, 이번에는 장비사느라 썼던 돈을 다음에는 업그레이드 조금만 하고 다른데 돌릴 수 있을거고 그러면 다음에는 사운드나 배우에도 신경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길겁니다. 스토리가 뭔 필요냐고 요새 말 많이 듣고 계시는 심감독이 바보가 아니라면 상세 시나리오나 연출에도 신경 쓸 여유도 생기겠지..하는건 좀 오버하는 소망입니다만.; 걸작 컨텐츠는 수많은 쓰레기를 밟고 나오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당장 기반이 아무것도 없는데 최고 퀄리티가 아니면 수용하지 않겠다고 외친다면, 적어도 문화 상품 측면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스필버그 손자도 절대로 나올 수 없을 겁니다. 그래도 전혀 괜찮아. 라고 하시는 분은 그것도 자유롭게 선택하시면 되겠지만. 저는 다음에는 사운드도 빵빵한 한국산 환타지를 보고 싶은 관계로. 디워는 한번 더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발 안 망하고 돈 벌었으면 좋겠습니다.
p.s. 제작자의 고생과 작품의 평가는 별개로 하는것이 맞겠지만, 심형래씨의 고생이 아니라 그래도 쪼금 더 나은걸 만들어서 팔아보겠다는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용가리와 디워. 아무나 맨땅에 헤딩으로 시작해서 그만한걸 만들 수 있는건 아니겠죠. 현재 수준이 월드 베스트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죠. 특수효과 영화와 SF 영화 용어 구분은 조금 정확히 해주시면 하는 소망은 있습니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