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에서 하는 공연이라고 하면, 어딘가 모르게 클래식 또는 오페라 라거나 대규모 합창공연 - 크리스마스 근처에 하는 헨델의 메시아 공연같은 - 그런게 생각나는 까닭으로, 예매 하면서 당연히 오케스트라 공연이라거나 어쨌거나 연주회라고 생각하고 있던 누군가. 회사 끝나고 헐레벌떡 샌드위치를 먹고 세종문화회관 방향으로 뛰는데, 야광봉 행상이 있는 것을 보고 잠시 당황했습니다. 들어가보니 역시나, 드럼과 베이스와 키보드와 조명 쇼를 위한 약한 스모크 분위기. 냐훗훗.
공연 시작전 무대 모습...그래봐야. 3층 꼭대기서 폰카. -_-;;
적당히만 건조하고 소리가 흐트러지지 않아서 클래식 공연장으로는 상당히 선호하는 세종문화회관입니다만, 엠프랑 스피커 쓰는 공연은 거의 처음이어서 어떨까 했는데..결론부터 말하면 제 생각에는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은 엠프 쓰는 공연에 분위기 띄우기에는 그다지 좋지 않은 듯 합니다. 덤으로 2/3층은 경사가 매우 심하고 좁아서 일어나거나 움직이거나 할 수도 없구요.
무대에 나와있는 악기 구성을 보고 주위를 둘레둘레 보니 스피커가 상당히 부실하여 약간 우려하던바, 아니나 다를까 첫곡을 공각기동대로 시작하는데, 깨끗하게 들리긴 하나 스피커 출력 아슬아슬한 정도에 언제 삐익- 할까 불안하고 벽이 소리를 다 먹고 반향이 없으니 메탈풍 음악인데 음이 공연장에 가득 차지 않아서 휑..한 느낌. 3층이라 더 심했겠지만 그래도 소리가 깨끗하니 장비를 빵빵하게 갖추면 좋을거 같은데 그런 대형공연은 3천석밖에 안되는 세종홀에서는 안 하겠지요.^^
그리하여 공각의 보컬을 맡은 러시아 언니(Origa씨.?)가 반음 낮은 멜로디로 계속 삑을 내시면서 약간은 불안불안하지만 기대만땅 공연은 시작되었습니다. 계속되는 삑과 불안한 스피커 속에서도 익숙한 멜로디와 공연장을 찾은 팬들의 환호성과 더불어 칸노요코 언니님 등장...하셨는데. 이게 어인.... 70년대(?)어설픈 폭주족풍의(?) 복장 + 올린머리에 반짝이 머리장식. *=ㅠ=* 더 얹어서 나와서 피아노앞에 서시더니 딱 제가 추는것 같은 흔들흔들 댄스를 추십니다. 그리고 그 댄스는 공연 끝날때까지 계속. (각혈.;) 귀여우셨는데 사진이 없어서 매우 유감이에요. 냐하하하.
공각기동대 관련 몇곡이 흐르고, 비밥 관련도 몇곡 나오고, 비밥의 보컬곡과, 드디어 드디어 Maaya의 보컬곡. 소름끼치게 잘 부르더군요. 에스카플로네도, 비밥 관련도. 그리고 라그나로크2 음악이 몇 나오고, 한시간쯤 좀 넘어가는 시점에 잘 모르므로 박수치면서 듣고 듣다가 급기야는 요새 수면부족의 여파로 꾸벅 졸까 하는 고민을 살짝 하다가 음악이 웅장한걸로 확 바뀌면서 무대 뒷 막이 올라가는것에 화들짝 놀라서 깼더니. 오케스트라가 빙글 돌면서 등장했습니다. 그 뒤로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에스카플로네와, 라그나로크 관련 중요음악인 듯한 것 몇개와, 등등. 그렇게 공연은 흘러흘러 가서 에스카플로네의 유비와. 를 보컬 세명(Origa씨, 야마네씨, 마아야씨.)이 한국어로(!) 부르고, 비밥 엔딩이었던가를 부르고. (Maaya가 2층 파이프오르간 쪽에 나타나서 조명을 받으면서 노래하는게 정말 천사같어요. 콘서트 보러간 보람의 50%는 그녀에게. >_<) 그리고 오케스트라 메들리로 1차 앵콜을 마치는 순서로..^^
칸노씨가 마이크를 들고 나오더니 '안녕하세요~' 해서 화들짝. 목소리가 너무 어린데다가 인형쇼 분위기랄까, 그런 과장풍이라서 대 폭소. 인사 하려나보다 했더니 멤버소개를 한국어로 하나씩하나씩 합니다. 대체 언제 어째서 한국어를? 하는 생각이 들긴했는데. 집에와서 찾아보니 라그온과 그 전에 작업 하시면서 공부하셨었다는. 말놀이 뉘앙스까지 커버하시는게 진짜..멋졌어요. >_<!!
그리고 마지막 앵콜로 피아노 독주... 화면에 손 부근을 클로즈업해서 메들리로 몇곡 연주하다가, 갑자기 화면이 흑백으로 바뀌면서, 연주하는 한편으로 한손으로 그림자 놀이. 그림자 카드로 '와서 어땠어?' 라던가. '사랑해요' 라던가 '♡' 라던가 하는 OHP필름 그림자놀이. 마지막에 서비스 최고였습니다. >_< 그러고보면 재주가 많으신 칸노요코씨. 공연중 피아노 치고 키보드 치고 실로폰도 치고 아코디언도 켜고 소리나는 파이프도 돌리고 피콜로(?)도 부셨다는.
우리나라 공연 가격은 어지간한 공연 수준으로는 VIP 또는 R석 요금을 안 아깝게 만들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보통은 3층 꼭대기. 조금 맘에들면 2층 구석이라던가를 찾는 편입니다. 그나마도 요새 B석 이하가 없이 3층 사이드랑 뒤쪽 제외하고는 모조리 S라거나 하는 괴상한 좌석구조의 공연이 늘어나서 약간 불만인가운데, 이번에도 A석까지밖에 없는 3층꼭대기 사이드의 약간 중간정도 자리에 혼자 툴툴거리며 공연 봤다지요. 그래도 예매 시작 2일 지나서 알았는데 표 구한게 다행인 상황에 리뉴얼한 세종홀은 무대 사각이 거의 없어서 그럭 볼만한게 그나마 위안. 그리고 공연 끝나고... 좌석이 없어서 VIP 못 끊은게 좀 눈물났어요. 이런 공연정도면 비싸지만 진짜 즐거웠을텐데..라던가. 막판에 1층은 다 일어나시더군요. 우..부러워라.
소리가 어쩌니 저쩌니 투덜투덜 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 특히 후반부 - 즐거운 공연이었습니다. 공연장과 좀 컨셉이 안 맞았달까. 그게 좀 아쉽긴 했지만요. 2천석 이하 규모의 소극장이나, 좌석이 많아도 좀 모여있거나 스탠딩(이런 공연은 스탠딩 원츄!!)이거나 한 좁은곳에서 엠프 팡팡 틀고 했으면 훨씬 더 재미있었을거 같은 공연 구성이었거든요. 오케스트라는 좋았지만 세종홀 채우기는 인원이 좀 부족했던데다 엠프음쪽에 눌려서 3층에는 현악이 거의 안들리다시피..T-T. (원래 현은 꼭대기로 잘 안올라옵니다만.; 싼 좌석은 그냥 싼게 아니므로..T-T) 그리고 보면 칸노씨 콘서트는 처음이라고 하던데. 일본쪽에서도 안했던 이런 규모의 공연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한거라면 나름 그럴만 했을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어쨌거나 즐거운 공연을 아마도 반쯤은 게임사 덕에 볼 수 있게 된 셈이니. 좋은일 좋은일.
이번 일을 기반으로 일본에서 제대로 공연하다고 하면 또 가보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칸노씨 천재인건 알았지만 약간 사이코(칭찬입니다. 냐훗.)라는걸 알게 된 공연이기도 했구요. 얹어서 초절정 귀여우시고. 음악이야 더 말할것도 없지요.
덤으로 주말에 라그2 깔아서 좀 돌려볼까 살짝 고민중~ |